- 평점
- 8.5 (2025.02.28 개봉)
- 감독
- 봉준호
- 출연
-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아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레트, 마크 러팔로,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 패스티 페런, 마이클 먼로, 카메론 브리튼, 크리스천 패터슨, 로이드 허친슨, 다니엘 헨셜
미키 17, 복제, 자아, 그리고 테세우스의 두 척의 배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은 인공지능과 로봇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지만,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AI 시대'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들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 질문은 바로 "자아란 무엇인가?", "복제된 인간은 과연 원본과 같은가?" 이다.
복제와 연속성: 이미 당연한 전제로 작동하는 세계관
영화 <미키 17>은 죽음 이후, 기억과 감정을 포함한 자아의 전부를 새로운 신체에 전송하는 과정을 '복제'의 형태로 묘사한다. 관객들은 이 설정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며, 미키 1 부터 미키 17까지의 개체들은 단순히 그리고 당연히 '같은 존재가 다시 만들어 진 것'으로 인식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미키 17이 실제로는 죽지 않았음에도 미키 18이 복제되면서, 두 개체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존재하는 두 개의 미키
문제의 발단은 미키 17이 아직 죽지 않았는데, 시스템이 그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고 미키 18을 만들어 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지금까지 죽기는 해도 연속된 하나의 존재라고 믿었던 '미키'가 '동시에 두 개로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관객은 직관적으로 느낀다. 아, 이건 단순한 복제가 아니구나, 같은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더라도, 물리적으로 두 개의 개체가 존재하게 되면 '같기도 하지만', '다른 존재'로 파악한다. (간단하게는 한 개의 마인드에 분신술을 쓴 동일 개체로 보기 어렵다는 뜻)
테세우스의 배가 두 척이 되었을 때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고전적인 '테세우스의 배' 역설과 맞닿아 있다. 원래 있던 배에서 부품과 조각들을 계속 바꿔 만들어진 배를 과연 원래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
관객들은 이미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한 것 같다
<미키 17>을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미키 1부터 미키 17까지를 하나의 연속된 존재로 받아들이며, 테세우스의 배처럼 '복제된 존재 역시 같은 존재'라고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그런데 <미키 17>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기존의 배가 여전히 항해하고 있는데, 그와 똑같은 부품으로 다시 만든 두 번째 배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즉 테세우스의 배가 두척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 상황은 물리적 정체성, 기억의 연속성, 사회적 인정 등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기준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누가 진짜인가? 혹은 그런 구분의 이미가 있는가?
초기 본능: 우리는 복제된 나를 반긴 적이 없다.
영화 속에서 미키 17과 미키 18은 서로 처음 마주했을 때 공감 보다는 '거부감'을 느낀다. (처음에 말이다.)
마치 자기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존재에게조차, 우리는 본능적으로 질투와 경계심을 품는다. 이는 인간의 '성선설'이나 '성악설' 같은 철학적 논의와도 맞닿아 잇는 점이 흥미롭다. 태초에, 우리는 동일한 존재를 만났을 때, 과연 연대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배척을 선택할 것인가? 우선은 배척을 할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더라.
흥미롭게도 <미키 17>은 단순한 철학적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미키 17과 18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왜 다른지 알듯 모를듯 하지만) 성격은 다르지만 협조하는 관계로 전환되어 간다. 단순히 '같은 존재'여서가 아니라,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도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복제와 자아라는 문제를 넘어서, 인간이 본능을 넘어 이성으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준다.
복제된 자아와의 공존을 생각하며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여러 명 있다면, 하나는 빨래하고 하나는 설거지하고 살겠지요.' 라고 말했다. 유쾌한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여기에서 다른 해석 혹은 인사이트를 읽을 수도 있다. 복제된 자아가 단지 경쟁자가 아니라, 공존 가능한 동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미키 17>은 SF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은 인공지능 시대의 자아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테세우스의 배가 두 척이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진짜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시대에 들어가고 있는 초입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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