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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짧게 정리되지 않고, 다시 길어지는 2천 년 전의 이야기

자료보는아저씨 2026. 1. 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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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의 글, 가라지, 

https://philcuc.tistory.com/93
 

마태오 복음의 '가라지' 비유를 읽으면서

"가라지"라는 말 앞에서마태오복음, 그리고 엠마뉘엘 까레르의 과 함께 하는 중이다. 요즘 을 읽고 있다. 얼마전부터 신약으로 넘어왔고, 지금은 그 첫 마태오복음 부분을 읽는다. 그리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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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앞서의 글 , 루카 복음, 

 

복음서를 읽는다는 것. (12살 예수님의 '내가 뭘?!' )

"복음서를 읽는다는 것"https://philcuc.tistory.com/93 마태오 복음의 '가라지' 비유를 읽으면서"가라지"라는 말 앞에서마태오복음, 그리고 엠마뉘엘 까레르의 과 함께 하는 중이다. 요즘 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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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정리되지 않고, 다시 길어지는 2천 년 전의 이야기
(마태오 복음, 루카 복음, 엠마뉘엘 까레르의 <왕국>, 도마 복음 관련 이야기임) 
 
가라지를 일찍 뽑지 마라 (마태오 복음)
 
2천 년 전의 이야기
 
 

'가라지'이야기, '루카' 이야기,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 

엠마뉘엘 까레르의 <왕국>

정경은 아니지만, 도마복음 이야기, 

그리고 의문(혹은 의심). 

 

복음 읽기의 묘미라고 감히 이야기 해 본다. 

 

가라지 같은 삶을 이야기하는 중에 어느 새 예루살렘의 풍광을 떠 올리고, 또 마태오, 루카, 이어서 도마복음에 닿았다.

짧게 정리되지 않는 깊은 길, 길어진 길을 걷고 있다. 

 

"제대로 된 신자가 아닌 것 같아."

문득 그런 말이 생각난다.

근데 제대로 된 신자란 뭘까?

* 성경을 암송할 수 있는 사람?

* 교리를 척척 외우는 사람?

아니면,

* 끊임없이 묻는 사람?

* 말씀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사람?

* "정말 그랬을까?"를 스스로 되묻는 사람?

 

어느 한 가운데에 있게 되었다. 

복음을 읽으면서, 복음은 '정답을 외우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까레르처럼, 믿었다가 의심했다가, 다시 돌아보고, 그러다가 다시 자문하고...

이런 식이 오히려 '살아 있는 신앙의 형상'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예수의 말씀이 '진짜 그분의 말'일까?

이런 질문, 믿음을 흔드는 질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는 질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마복음이든, 성경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 그렇구나'하는 믿음이 아니라, '정말 그런가?'하고 다시 펴보는 믿음 아닐까?

도마복음이 다시 떠오른다.

"예수의 말씀"을 드라마 없이, 설명 없이, 담백하게 그냥 담았다는그 복음. (읽을 예정이다.)

"하느님 나라는 너의 안에도 있고 너희 바깥에도 있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하면, 너희는 가난하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면, 너희는 살아 있는 아버지의 자녀다."
<도마복음 3번>

 

"맏는 다는 것은 자꾸 묻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면서

예수님은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앞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이러한 머뭇거림이 그래도 '머무름'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련다.

복음을 짧게 요약하여 이야기할 수 없듯이, 사람의 신앙 혹은 믿음과 그 체계도 간단히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믿고 싶은가" 하는 물음에는 계속 "그렇다"고 답을 하겠다. |믿고 싶어하면서, 믿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또 다시 묻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신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아직 답은 없지만 그 '머무름'이 신앙의 시작일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완벽한 신자"라는 말은 없다.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야 한다. 적어도 그 길 위에 머무르고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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