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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퍼니의 감각에, 내 나름대로 응했다는 말", (장강명, 먼저 온 미래, 무라카미 하루키, 에피퍼니)

자료보는아저씨 2025. 8. 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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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퍼니의 감각에, 내 나름대로 응했다는 말"

내가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의 신작(2025년) <먼저 온 미래>를 읽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이 인용된 구절을 마주쳤다.

바꿔 말하면, 그때의 에피퍼니의 감각에 어느 정도 내 나름대로 응할 수 있었다.라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문장이 멋을 부리려는 인상이 없지 않지만, 딱 하루키의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에피퍼니'라는 단어를 봐야 한다.

에피퍼니라는 말의 뜻은 알지만, 의미의 결이나 그 문장에서는 다소 어려웠다. 

다시 단어 부터 짚어 봐야 했다. 

 

에피퍼니, epiphany 

어떤 사소한 순간에, 갑자기.

마치 창문을 여는 바람처럼,

혹은 오래 꺼둔 전등이 스르르 켜지듯,

인생의 진실이 '보이는' 순간.

 

문학에서는 "계시"라는 단어를 하찮은 일상의 뒤쪽에 조용히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너무 대단하면 종교가 되고, 너무 작으면 그냥 가벼운 감상이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는 그게 문학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라카미의 그 문장

"에피퍼니의 감각에 내 나름대로 응할 수 있었다."

 

그는 응했다고 말한다. 

깨달음이나 통찰, 놀람이나 감격이 아니라, (가벼운) 응답.

누가 무엇을 던졌고, 나는 그 던짐에 조응했다. 그 조응은 반응이고 감각이고 글쓰기다.

 

내가 이 말을 붙잡은 이유는 아마 나도 그런 순간을 겪었기 때문이겠다. 

지하철 안에서, 무심히 지나친 사람들, 그리고 버스에서 바깥을 보다가, 

심야에 듣는 음악의 한 소절에서, (조, 임의 유튜브 영상의) 피아노 선율의 중간에서, 

케이팝의 그 열정적 순간 사이의 쉼표 속에서, 

 

나는 그 순간에 완전하게 혹은 온전하게 호응하거나 댓구를 치지는 못하지만 (혹은 못했어도)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호응은 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키만의 문장이 아니라 그 독자들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열렬하지만 차분한 매우 뜨겁지만 한순간 만나는' 그런 순간이지 싶다. 

 

글이란 어쩌면 그 응답의 잔향을 어딘가에 조금씩 남겨두는 것이 아닐지, 

적어도 하루키 작가의 글에서 우리는 그런 남겨둔 것을 만나는 것이 아닐지 싶다. 

 

 

(실제 사진 아님. 무라카미 하루키 닮은 분이 책과 음악에 쌓여 글을 집필하는 것을 AI 이미지로 만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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