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비오는 날 밤.
요 며칠 우울한 가운데 '다시' 찾아 본 영화,
<행오버>, 토드 필립스 감독의 코미디, (훗날 <조커>로 관객의 뇌를 흔들었던 그 사람의 코미디)
<행오버>, 술 냄새 나는 철학 시뮬레이터
나는 이걸 B급 영화라고 부르고 싶다. 강한 칭찬으로의 'B'다.
이 영화는 웃기고 지저분하고, 남자들끼리 낄낄거리며 보기 딱 좋은데, 잘 보면 되게 정교하게 짜여 있다.
형이하학적인 구성이랄까, 구조미학이 살아 있는 코미디다.
술(약?), 결혼, 실종, 호랑이, 마이크 타이슨, 아기, 헤더 그레이엄, ..
이 난장판을 균형감 있게 굴릴 수 있는 건 '거장'의 감각이기에 가능하다.
영화는 남성 판타지의 폭주 시뮬레이션이다.
총각파티를 명분 삼아 라스베이거스에 간 네 명의 남자들이
모든 걸 잃고, 망치고, 기억도 없어진 채
어떻게든 이틀 앞으로 다가온 결혼식장에 실종된 친구를 신랑으로 데려다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헤더 그레이엄이 에스코트(!) 여성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무리 중 한 명과 즉석 결혼까지 한다. 아주 꽉찬 진도의 로맨스 이기도 하다. ㅎㅎ
그 무리 중 한 명, 스튜
늘 강박적인 혹은 남자 친구에게 강압적인 여자친구를 둔 치과의사이다.
라스베이거스에 간다고 하면 안 될 걸 알기에 '나파 벨리 와이너리 투어 간다'는 식으로 둘러대고는 총각파티에 합류한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헤더 그레이엄이 연기한 에스코트 여성(부업 스트리퍼)과 약기운 반, 홧김 반으로 결혼해 버린다.
와이너리는 커녕 와이프가 생겼다. ㅋ

이 영화, 사실 남자들에게 "그럴 수 있지" 인데,
여성 관객들은 과연, 어떨지. '이게 뭐야~' 할 수도 있겠다.
이걸 감독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 캐릭터"를 영화 안에 아예 넣어놨다.
스튜의 여자친구,
엄격하고, 정색하고, 조소하고, 남자친구의 일탈을 계속 감시하려가는 인물,
(물론 그녀도 유람선의 바텐더와 관계한 적이 있는 그런 캐릭터이다.)
후반부에 스튜는 이제 못 참겠다고 폭발하는데, 그 순간 남성 캐릭터들, 남성들의 무책임한 일탈이 면죄부를 받는다.
"너도 완벽하지 않잖아" ... 알아 알아 우리도 그래, 제발 우리를 너무 비난하지는 말아줘.
코미디로 위장하여 젠더간 협상도 시도하고 있는 영화다. 협상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한다.
웃음이라는 형식으로 포장하고, 그걸 비난하는 시선까지 포함해서 묘하게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강 싶은 장면 중 하나 - <레인 맨> 오마쥬
도박장에 입장하는 장면에서 "Iko Iko" 음악이 깔리면서, 마치 더스틴 호프먼 처럼 앨런이 등장한다.
오마주 영상 편집이 완벽하다. 나는 거기서 큰 소리로 웃으며 뿜었다.
주인공 네 명과 헤더 그레이엄까지, 그 위기의 순간에 모두 웃는 장면이 잠시 연출된다.
감독의 생각이 느껴지는 대목

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장면과 배우
주인공들이 운전하는 차의 트렁크를 열었는데, 갑자기 한인계 배우 켄 정이 알몸으로 튀어 나온다.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를 끌고 나타난 켄 정, 혼자서 대사, 동작, 비명까지 도배하면서 영화 전체를 '이성을 챙길 수 없는 단계'로 올려 놓는다.
웃기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알몸으로 앞뒤 막 나온다. 꽈리고추도..) "뭐야 방금 뭐가 지나갔는데" 하는 씬이다.

여기서 한 술 더 얹자면, 토드 필립스 감독 본인 등장
감독 토드 필립스 본인도 카메오로 출연하여, 이 영화에 자신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려 준다.
주인공 네명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그 열린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한 남성이 여성의 치맛속에 있는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건 감독이 직접 몸으로 B급 선언을 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연출로 설명하지 않고,
"내가 이 영화 그 자체야" 하는 식으로, 품위와 고상함은 벗어던진 '창작자의 알몸 선언' 같은 장면이다.
자기 희화화한 개그 철학 쇼.

추천? !!!
음, 여성들에게 추천할수 있을지 망설여지는 영화다.
이 영화는 '남자들끼리의 도피 욕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판타지라서, 여성들에게는 웃음 혹은 불쾌감이 어떤 비율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네, 네, 알고 있어요', '욕하고 싶은 거 알아요', "해명형 욕구 코미디"이기도 하다.
행오버2, 3 는...??
그러고보면, 이런 시리즈로 나오는 영화들,
2편, 3편 가면 갈수록 힘이 빠지기 마련인데, <행오버>는 그 품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고품격 B급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걸 보면서 토드 필립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똑같은 인물들, 역시나 행오버라는 소재인데, 각각이 다 재밌다. 이걸 같은 주인공들이 계속 해 낼 수 있는 스토리를 짠 것도 대단하고,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기간 (2025년 5월 기준)
<행오버>, <행오버2>, <행오버3>
현재 우리나라 넷플릭스에서 2025년 5월 28일까지 시청가능하다고 한다.
웃고 싶다면 ... 추천,
5월 28일이 오기 전에 또 봐야 겠다.
사족, 로알드 달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진탕 속에서도 창작자의 강력한 철학은 빛을 발한다."는 걸 다시 느꼈다.
로알드 달 작가는 아이들을 위한 문학 작품으로 매우 매우 유명하지만, 어른들 상대로 지독하게 웃긴 작품들을 썼다.
맞다, 이 영화는 술에 취한 아주 훌륭한 이야기꾼의 속내 같은 영화다.
기억은 없어졌는데 기분은 남기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창작가의 고마운 작품이다.
사족2, 함부로 결혼하면 안된다.? 그런가? 아닌가!?
이 영화 <행오버> 에서, 치과의사 스튜는 "라스 베이거스"에서 술에 취한채 혹은 약에 취한채 - 하지만 그 순간 진심으로 좋아서 - 스트리퍼이자 에스코트하는 헤더 그레이엄과 결혼한다. (물론 다음날 취소한다.)
2025년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영화 <아노라> 에서, 주인공 아노라는 - 이 영화에서 스트리퍼 혹은 폴 댄서이자 에스코트하는 여성 - "라스 베이거스"에서 술에 취해 혹은 젊은 기운에 - 하지만 그 순간 진심으로 좋아서 - 결혼을 한다. (물론 그 다음 주에 취소 당한다. )
두 영화, 결혼이라는 바인딩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건덕지를 한 꼭지씩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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