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중미
- 출판
- 창작과비평사
- 출판일
- 2007.08.20
직업 차별과 능력주의 사회에 던지는 질문
김중미 님의 '자발적 가난' 철학,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다.
요즘 SNS에서 본 내용이다.
고깃집에서 일하는 직원이 고기를 굽고 있는데, 손님 중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라고 말하더라. 알고 보니, 그 직원은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인데,...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누군가 무시했는데, 알고보니 그 아저씨는 최고학부를 졸업하고 교장으로 청년 퇴직한 분이고 연금도 많이 받는 분이라고...
공사장에서 작업복 입고 헬멧쓰고 다니는 분들인데, 알고 보니 다들 석박사 학력에 연봉 억대 전문가들이라고...
이런 이야기들, 듣다보면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사이다' 반응도 많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정말 학력이 낮고, 연봉이 적은 사람들은 무시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 혹은 "실제 유학 다녀오지 않고 고기를 굽는 직원, 보통의 경비아저씨, 작업자 분들이라면 어떻게 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위의 인용에서 처럼 '사실은 똑똑한 사람이야, 사실은 부자야, 사실은 ..' 식으로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을 밝혀야 하는 것일까.
그럼 결국, 우리가 진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오해였던 것인가? 이런 나름 통쾌한 일화들이 되려 다른 형태의 차별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중미 작가가 말하는 '자발적 가난'
존경하는 김중미 선생님이 떠오른다. (10여년 전 창비 팟캐스트에서 들은 '자발적 가난'이라는 개념을 듣고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김중미 작가는 오랜 세월 동안 <괭이부리말 아이들>, <모두 깜언> 등 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약자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가님이 말하는 '자발적 가난'은 낭만적인 자급자족의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모두가 물질적으로 성공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치 없는 삶은 아니라"라는 철학에 가깝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말씀하신다.) 끝없는 경쟁과 소빅에 몰두하다 보면, 우리는 서로를 잊고, 자기 자신마저 보지 못하게 된다.
'덜 가진 삶'이 분명 불편할 수 있지만 오히려 더 정직하고 따뜻한 삶일 수 있다는 것. 더불어 살며, 덜 비교하고, 조금은 느리게 사는 길도 있다는 것이다.
- 저자
- 마이클 샌델
- 출판
- 와이즈베리
- 출판일
- 2012.04.24
'괭이부리말'에서 나오는 질문들
<괭이부리말 아이들> (예전에 MBC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도 소개가 되었고, 많은 분들이 읽은 것으로 안다.)을 읽어보면, 사회 가장자리에서 사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돈은 없지만 서로를 챙기고 아픔에 손을 얹어주는 장면들이 많다.
김중미 작가의 작품엔 '눈물 버튼' 같은 장면이 많이 않은데도, 어딘가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마도 그것은 실생활에 기반한 진심의 언어로 써 내려가기 때문일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의 불편한 점
그렇다고 해서 김중미 작가가 "성장하지 마라, 노력하지 마라"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렇게 묻는지 모른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도착한 곳은 정말 당신이 원하는 곳인가?"
현대 사회는 능력주의, 소위 "메리토크라시"를 외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러한 성과주의, 능력주의, 메리토크라시 같은 것들이 종종 약자를 비하하고, 불행한 사람을 조롱하는 구조로 변질된다고 경고한다. "성공은 전부 내 노력의 결과"라는 믿음은, 동시에 "실패는 네 탓"이라는 무서운 잣대가 되기도 한다.
AI 시대에 묻는 '노동'의 의미
더 나아가 지금 우리는 AI 시대에 접어들었다.
노동이 더 이상 생존의 조건이 아니게 될지 모르는 세상.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김중미 선생님의 메시지가 여기서 유효할 수 있다.
경쟁 대신 협력, 소비 대신 연대, 물질 대신 사람.
말씀하시는 "조금 다른 삶"은, 어쩌면 우리가 곧 맞이할 새로운 시대에 꼭 필요한 길잡이일지도 모른다.
- 저자
- 마이클 샌델
- 출판
- 와이즈베리
- 출판일
- 2020.12.01
더는 "생존을 위한 노동"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온다면?
하물며 이제 우리 사회, 그리고 이 지구는 정말로 "일을 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한 시대"로 향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된 생산성, 그리고 AI 의 비약적인 발전이 더해 인류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자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인류가 태초부터 안고 있던 질문, "어떻게 먹고 생존할 것인가" 에서 이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계속하고 있던 질문 같지만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서 다시 묻는 질문으로서)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전환할 기회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사회 시스템과 인간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면 그 변화는 공허할 뿐이다. 이제는 노동의 의미, 삶의 목적, 가치의 기준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그에 걸맞은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준비, 그리고 인간 내면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김중미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자발적 가난'은 그런 상상력의 전환에 지침으로 삼을만하다. 그것은 단순한 빈곤의 미화가 아니라, "(얼마큼 갖고 쌓아두느냐과 관계없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향한 모색이다.
우리는 각자 다르게 살아도 괜찮은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사회는, 우리는, 그리고 이 지구는 점차 그렇게 바뀌고 있다. 누군가는 좋은 학벌을 갖고, 누군가는 좋은 집에 살고, 누군가는 다소 불안정한 일을 하며 산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누구의 삶을 (상대적으로)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억지로 줄을 서고 순위를 매기며 따라서 살아야 할 필요가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
(하지만 메리토크라시라 할지, 더욱 이러한 것이 견고해지고 있다. 샌델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말 중요한 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시대, 이제는 그 안에서 나답게 생각하고,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마무리....?
고기 굽는 사람, 경비 아저씨, 작업복 입은 사람들.
그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이웃이며, 고단한 하루를 버텨낸 누군가라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직업이나 소득 수준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물음의 한복판에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이제는 더 많이 소유하고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점차 물질의 부족이 아닌, 방향의 부족(부재)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삶을 인정하고 연결하며 살아가는 공존의 가치, 그리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이다.

해당 기사 링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8466.html
“그냥 살자, 우리 ‘생존신고’ 하고 살자”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가 종료됐는데도 흙길에 나무만 무성하다. 이런 곳에 집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안고 비탈길을 오르자 단층주택 한채가 보인다. 소설가 김중미의 집이자 공부방이다. 지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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